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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INSPIRATION (마음의 꾸준함)/오늘의 독서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들을 죽였다."

by S.P 2025. 3. 11.

📕 도서 정보

 
수레바퀴 아래서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한스 기벤라트는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와 학교,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특출난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는 신학교에 차석으로 합격한 한스는 점점 더 버거운 기대를 받게 되지만, 그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포기한 채 더욱 공부에 매진한다. 신학교에서 만난 자유분방한 친구 헤르만 하일너의 영향을 받은 한스는 점점 성적이 떨어지고, 하일너의 퇴학 이후 신경쇠약으로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올리버
출판일
2024.08.06

 

📚 책과 저자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20세기의 중요한 독일 작가이자 시인, 화가였습니다. 스위스 국경 근처의 독일 칼프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헤세는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라 자신도 신학교에 다녔으나, 엄격한 교육 시스템에 반발해 중퇴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와 같은 작품의 배경이 됩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개인의 정신적 여정과 자아 발견을 다룬 '데미안(Demian)', 동양 철학에 영향받은 '싯다르타(Siddhartha)', 그리고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 등이 있습니다. 특히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의 초기 작품으로,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개인성 억압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헤세의 작품은 자아 성찰, 정신적 깨달음, 동양 사상의 영향,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소외 등의 주제를 탐구합니다. 1946년에는 문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특히 1960-70년대 반문화 운동 시기에 전 세계 젊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독일의 영재 한스 기벤라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한스는 지방 목사의 추천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격한 교육 시스템과 획일화된 학문적 접근은 한스의 창의성과 개성을 억압합니다.

신학교에서 한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 우정을 쌓지만, 학교의 규율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내면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스는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갑니다.

결국 한스는 학업의 실패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빠져 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헤세의 이 소설은 교육 시스템이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적 기대와 개인의 자아 실현 사이의 갈등을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 내용 요약

1장에서는 마을의 영재 한스 기벤라트의 소개와 그가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 입학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마을의 목사와 교장 선생님은 한스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시험에 추천합니다. 한스는 여름 방학 동안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도 목사의 지도 아래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포함한 다양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합니다. 그는 낚시나 자연 속에서 보내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에 자부심을 느끼며 한스에게 더 많은 압박을 가합니다.

2장에서는 한스가 입학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이 묘사됩니다. 시험은 격렬했고, 한스는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합니다. 시험 후 그는 잠시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가 낚시를 즐기며 자연과 교감합니다. 결국 합격 소식을 들은 한스는 마을에서 영웅처럼 대우받습니다. 그러나 곧 마울브론 신학교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하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공존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장은 한스가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나 새로운 학문적 여정을 시작하는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3장에서는 한스가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 후의 생활이 그려집니다. 처음에 한스는 새로운 환경에 열정적으로 적응하려 노력하며 공부에 몰두합니다. 엄격한 일정과 규칙이 있는 학교 생활 속에서 그는 헤르만 하일너라는 독특한 성격의 학생과 친구가 됩니다. 하일너는 재능이 뛰어나지만 반항적인 성격으로, 학교의 규율에 도전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추구합니다. 이 우정은 한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하일너의 영향으로 한스는 점차 학교 시스템에 의문을 갖기 시작합니다.

4장에서는 한스와 하일너의 우정이 깊어지는 한편, 한스가 점차 학업에 흥미를 잃어가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학교의 엄격한 교육 방식과 암기 중심의 학습은 한스의 창의성을 억압합니다. 하일너는 금지된 책을 읽고 규칙을 어기며 자신만의 지적 탐구를 계속하는 반면, 한스는 내적 갈등 속에서 학교의 기대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5장에서는 하일너가 학교 규칙을 어기고 문제를 일으켜 결국 퇴학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유일한 친구의 상실로 한스는 더욱 고립되고, 학업 성적도 급격히 하락합니다. 그는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정신적 건강이 악화됩니다.

6장에서는 한스의 학업 실패와 그가 겪는 깊은 우울감이 묘사됩니다. 교사들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스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어갑니다. 결국 그는 신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7장에서는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가 기계공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한때 영재였던 소년이 이제는 평범한 직업을 갖게 되며, 그의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한스는 자신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내면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는 기계공 동료들과 술을 마신 뒤 집으로 향하다가 강에 빠져 사망합니다.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의도적인 자살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이 사건은 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기대의 압박이 한 젊은이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은 한스의 장례식과 그의 죽음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으로 마무리됩니다.

 

💫 인상 깊은 구절들

반나절 혹은 하루 동안 수영하고, 잠수도 하고, 노를 휘휘 젓고, 낚시도 했다. 아, 낚시! 낚시하는 법을 까맣게 잊을 뻔했다. 작년에는 시험 때문에 낚시를 못 하게 돼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한스는 강물을 한참 바라보았다. 초록빛에 물든 강가를 보자 사색에 잠기며 슬픔에 젖었다.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제멋대로 굴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아득히 멀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졌다
한스는 신학교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앞지르려면 더 큰 야심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을 뛰어넘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한스는 왜 그들을 뛰어넘길 바랐을까? 본인조차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이 학우들보다 얼마나 앞섰는지, 교사와 선생들이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며, 심지어 존경할지를 생각하다 보면 한스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조바심과 엄청난 자부심에 사로잡혔다.
교장이 주에서 부여받은 의무와 일은 소년의 내면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에너지와 본능을 따르는 욕망을 가라앉히고 뿌리 뽑은 후, 차분하고 온화하며 주에서 인정할 만한 이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밀림을 개간하고 정화하며 강제로 제한해야 하듯, 학교 역시 자연적인 인간을 부수고 꺾으며 억지로 제한해야 한다. 학교가 할 일은 학생이 정부 당국에 승인받은 규율에 따라 쓸모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고, 자질이 완전히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군대 생활처럼 철저하게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 완성된다.
숙제가 다시 너무도 많아졌다. 한스는 또다시 과제 위에 몸을 푹 숙인 채 밤늦게까지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근면 성실한 아들을 대견해했다. 아버지의 답답한 머릿속에는 부족하며 변변찮은 사람들이 으레 품는 막연한 이상이 박혀 있었다. 자기 몸통에서 싹 튼 가지가 자라 쭉쭉 뻗어 나가리라는 아둔한 생각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삶과 학업이 신학교에서 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고기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져 많이 잡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이를 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자 한스는 낚시를 완전히 끊고 다락방 속 서랍장에 낚시 도구를 넣어 버렸다.
한스, 말도 안 돼. 게다가 그건 죄악이야. 네 나이엔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시면서 운동하고, 푹 쉬어야 한단다. 방학이 왜 있겠니? 방구석에 처박혀 내내 공부만 하라고 있는 건 분명 아니거든. 넌 피골이 상접했구나.
영혼을 해하는 것보다는 몸을 해하는 게 열 배가 넘게 낫다는 거야!
올바르게 처신하는 학생은 주에서 여생 동안 적절히 보호하고 보살펴 주겠다는 서약도 받았다. 사실 이런 서약에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으리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어떤 학생이나 아버지도 간파하지 못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기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두 배 더 공부해 2등이 되기보다는 절반만 공부해 1등이 되는 것을 선호했으리라.
이건 날품팔이에 지나지 않아. 네가 원해서 이렇게 공부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선생님들이랑 너희 아버지가 무서워서 열심히 하는 것뿐이지. 반에서 1등이나 2등을 하면 뭘 얻는데? 난 20등인데도 너희 같은 공붓벌레만큼 똑똑하잖아.
사람들은 한스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앙상하며 창백하다고 여겼다. 수도원에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녔는지 묻기까지 했다. 한스는 걱정할 일은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머리가 자주 아픈 것만 빼면 건강하다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이 친구야, 그렇다면 정말 이해가 안 가는군. 분명 뭔가 잘못된 게야. 좀 더 노력해 주겠다고 나와 약속하겠나?” 위엄 있는 교장이 오른손을 내밀자, 한스도 맞잡았다. 교장은 진지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그래야지. 흐트러지지 말게. 안 그러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 테니까.”
동정심 넘치는 지도교사 비드리히를 빼면, 가냘픈 한스의 무기력한 미소 뒤에서 고통과 절망 속에 빠진 영혼이 허우적대며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학교가 내세운 미덕과 아버지와 몇몇 선생이 품은 잔인한 야망 때문에 연약한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작아졌다고 생각한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한스는 왜 가장 예민하고 위태로운 어린 시절에 밤늦게까지 억지로 공부해야 했을까? 왜 라틴어 학교 친구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을까? 그들은 왜 낚시도 산책도 못 하게 하고, 터무니없이 가혹한, 야망이라는 헛되고 그릇된 이상향을 한스에게 심어 주었을까? 왜 주 시험이 끝난 후, 한스가 마땅히 누려야 할 방학을 즐기지 못하게 했을까?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망아지는 길가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려 쓸모를 잃고 말았다.
한스는 아버지가 품은 기대가 좌절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한스는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환영이 절망과 고독 속에서 못 미더운 위로자의 모습을 한 채 병약한 소년에게 다가왔다. 그런 환영은 점점 익숙해지며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는 바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죽기로 결심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기나긴 여행을 앞둔 사람처럼 아름다운 햇살과 고독한 꿈을 만끽할 정도였다.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잘 돌아갔다.
불구가 된 젊은이는 그리 쓸모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정해진 운명을 먼저 완수해야 했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좀 더 음미하기 전에는 이 땅을 떠날 수가 없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삶의 의미와 목표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어린 한스는 둘 다 잃고 말았다.
처음에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이 사그라들고 자살 생각을 그만둔 뒤부터 한스는 들쑥날쑥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한결같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한스는 부드러운 늪에 빠진 듯 서서히 쑥 가라앉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사라지고, 잠들고, 죽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청춘이 반기를 들며 삶에 고요하고 끈질기게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 힘겨워했다.
한스는 알지 못했다.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이 추억의 옷을 입고 다시 한번 앞에 나타나 행복하게 웃음 지으며 큰 행복이라는 상처를 남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두 즐겁고 유쾌한 추억인데, 너무도 멀리 떨어지고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애쓰고 열심히 공부하며 땀을 쏟아내고, 소소한 즐거움도 많이 내려놓으며 자부심과 야망과 희망찬 꿈에 부풀었는데, 다 헛수고였다. 그 모든 일을 한 끝에 옛 동창들보다 뒤처져 모두에게 비웃음을 사고, 기계공 작업장에서 하급 수습생이 되었으니까!
장난스러운 어린 시절 이후로 눈에 보이며 쓸모 있는 무언가의 형태를 손으로 빚어내는 기쁨을 맛본 적은 없었다.
평일에 손이 새카매지고 팔다리가 노곤해질 만큼 일해야 거리가 더 신성해 보이고, 태양이 더 밝게 빛나며, 모든 것이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이제 한스는 고깃간 주인과 무두장이, 제빵사와 대장장이가 햇볕 쏟아지는 집 앞 벤치에 앉은 모습이 그렇게나 당당하며 생기 넘쳐 보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더는 그 사람들을 비참한 속물로 여기지 않았다.
이제 술 마시는 게 재미있지 않았다. 온갖 불행이 머나먼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와의 다툼, 아침에 다시 대장간에 나가는 일 등이었다. 머리가 서서히 아파 왔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푹 쉬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영원토록 부끄러워하며 여생을 보내야 할 듯했다. 머리와 눈이 지끈지끈했다.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조차 없었다.
남과는 다른 삶을 살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수레바퀴 아래서
DALL-E, 수레바퀴 아래서

💭 나의 사색

한스 기베란트는 똑똑한 소년이다. 한스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장 총명한 학생이고 학교에서 항상 1등을 독차지 했다. 수영을 좋아하고 낚시로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한 소년이다. 하지만 공부하느라 수영도 못 하고 낚시도 못 하고 있었다. 자유로우며 제멋대로 굴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어 퍽 슬퍼지기도 했다.

3년 동안 키우던 토끼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공부를 했어야 했기에 토끼에게 쏟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구두장이 플라이크 아저씨는 한스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한다. <마음을 올바르게 먹고 신을 두려워한다면 라틴어는 썩 중요하지 않다>고. 소설의 초반부에 계속해서 이런 충고를 해주는데, 독자인 나로서는 고마운 길잡이가 되었다. 헤르만 헤세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주기적으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교장 선생님 그리고 목사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다른 학생보다 내가 뛰어다나는 우월감에 젖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어린 시절의 모든 즐거움을 던져버리고 두통과 씨름하면서도 기묘한 자부심과 도취감 그리고 확실한 승리감에 취했다.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 한 채로 치즈 가게에서 일하거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평범하고 비참한 삶을 평생토록 살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목을 조여왔다. 하지만 이내 곧 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목을 조이던 공포는 말끔히 사라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바뀌었다. 치즈 가게나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 속에 자유를 불어넣었다.

신학교에 합격 한 후 맞이한 방학은 천국이었다. 원하는 만큼 낚시를 했고 지겹도록 수영할 수 있었다. 세상이 뽐내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침과 저녁으로 세상의 향기를 도취했다. 낚시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마저 즐거웠다. 메뚜기를 잡아다가 미끼로 쓸 생각에 설레었고, 낚시 바늘에 걸린 메뚜기를 잡아먹는 물고기들을 숨죽여 지켜보는 것은 스릴 넘쳤다.

하지만 결국 방학을 대부분 공부를 하며 보냈다. 목사와 그리스어를 공부했고 교장과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목사의 추천으로 어떤 교수에게 수학을 배웠다. 방학 내내 예습하느라 바빴다. 두통이 있었지만, 찬란한 우월감이 비하면 사소했다.

기쁨과 즐거움의 온상이었던 낚시는 양심에 가책을 남기는 불온한 짓이 되어버렸다. 소년의 내면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에너지와 본능을 뿌리 뽑아 사회가 원하는 인간으로 개조하는 짓을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었다. 숙제 때문에 밤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이 근면하고 성실한 것이어서 뿌뜻해 마지 않는 아버지의 바램처럼 살았다.

소년은 방학 동안 맑은 공기를 한껏 마쉬면서 운동하고, 푹 쉬어야 한다는 구두장이 플라이크 아저씨의 한탄을 지나치는 바람 한 줌으로 여겼다. 그게 무엇이 중요하지. 이제 나는 신학생인데?

그렇게 한스 기베란트는 기어이 방학을 공부로 보내고서 신학교로 떠났다.

하지만 기어이 망가지고 말았다. 우정의 소중함을 알았지만 학교는 우정을 부숴버리라고 종용했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면서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약해졌고, 결국 학교를 나왔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너무 비참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이 허무했다. 삶의 의미와 목표가 사라졌다. 신학교에 가는 것 외에는 의미도 목표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다. 괴로웠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도중에 사랑을 맛보기도 하고 설렘을 느끼기도 했지만 배신을 당했다. 나만 진지했고 그녀는 가벼웠다. 견습 기계공으로 살아가는 것과 사무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강요 받았다. 그래서 친구가 먼저 길을 나선 견습 기계공이 되고자 했다. 역시 기계공의 일은 만만치 않았다. 충분한 근력이 필요했고 능숙해질 때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기계공을 무시했지만, 이제는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 본 세상을 처음 느껴보았다. 그들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싶었다. 열심히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을 수 없었다. 친구와 술로 삶의 기쁨을 잠깐 느껴보았지만 이내 곧 반복될 삶이 떠올랐다. 취기가 가셨다.

쉬고 싶다. 잠들고 싶다. 마음 편히 쉬고 싶다. 아, 저 강은 저리 고요하게 흐르는구나. 내가 어릴 때도 나와 함께 했고 내가 이렇게 비참할 때도 여전히 고요히 도도히 흐르는구나. 나도 저 강물에 뛰어들어 저 강처럼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고 싶다. 순리대로 그렇게 흐르고 싶다.

첨벙!

이제 술 마시는 게 재미있지 않았다. 온갖 불행이 머나먼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와의 다툼, 아침에 다시 대장간에 나가는 일 등이었다. 머리가 서서히 아파 왔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푹 쉬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영원토록 부끄러워하며 여생을 보내야 할 듯했다. 머리와 눈이 지끈지끈했다.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조차 없었다.

 

✍️ 마무리 생각

내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느낌이다. 한스의 죽음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래, 너는 이 고통을 끝냈구나. 나도 이 고통이 참 싫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목표를 좇아야 할까.

부모님은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내가 행복하기 보다는 내가 비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굶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부모님의 바램이 틀렸다. 나의 삶에 맞지 않는다. 모순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떠나야겠다. 모순이다.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나를 부모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든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슬프다. 너무 슬프다. 

아빠가 원하는 성공이 나를 자살로 몰고간다. 엄마가 보내는 방임이 나를 자살로 몰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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