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INSPIRATION (마음의 꾸준함)/오늘의 독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당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야말로, 멈춰서 반성할 때다."

by S.P 2025. 3. 9.

📕 도서 정보

 
허클베리 핀의 모험
1884년에 처음 발표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으로 출간되었지만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로 광활한 미대륙의 중남부를 흐르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허클베리와 흑인 노예 짐이 뗏목을 타고 여행하면서 겪는 사건과 모험이 중심 뼈대다. 허클베리는 자신을 신사로 만들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더글러스 부인과 매질하며 부려 먹으려는 주정뱅이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다. 그는 다양한 사람
저자
마크 트웨인
출판
문예출판사
출판일
2025.02.20

 

📚 책과 저자

마크 트웨인 (Mark Twain)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 1835-1910)입니다. 그는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성장했으며, 이 경험이 그의 많은 작품에 배경이 되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은 미시시피 강에서 수심을 측정할 때 사용하던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두 길(두 패덤)'을 의미합니다.

트웨인은 유머와 풍자, 날카로운 사회 비판으로 유명하며,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미국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1884년에 출판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트웨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 격으로, 허클베리 핀이라는 소년과 도망친 노예 짐(Jim)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며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요 특징:

  1. 사실적인 미국 영어 구사: 트웨인은 당시 미국 남부의 방언과 속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사실적인 묘사를 했습니다.
  2. 인종 문제와 도덕적 성장: 허클베리와 짐의 여정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와 도덕적 딜레마를 탐구합니다.
  3. 사회 비판: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 폭력, 위선, 미신 등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4. 성장 소설: 허클베리의 도덕적, 정신적 성장을 그린 성장 소설(Bildungsroman)의 특징을 갖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현대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 핀이라는 한 권의 책에서 나왔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미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출판 이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인종 차별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인정받아 현재는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내용 요약

허클베리 핀(일명 헉)은 톰 소여의 모험의 부유한 과부인 더글러스 부인과 그녀의 여동생 왓슨 양에게 입양되어 '문명화'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헉은 이런 구속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갑갑함을 느낍니다. 이때 헉의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마을에 돌아와 헉의 돈을 뺏으려 합니다. 아버지는 헉을 납치해 강가의 오두막에 가두고 학대합니다.

헉은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여 탈출 계획을 세우고 성공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는 미시시피 강의 잭슨 섬으로 도망쳐 숨어 지내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왓슨 양의 도망친 노예인 짐을 만납니다. 짐은 자신이 팔릴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도망친 상태였습니다.

헉은 처음에는 짐을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도덕적 갈등을 겪지만, 결국 짐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뗏목을 만들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짐은 자유를 찾고 헉은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 여정 동안 그들은 수많은 모험과 위험한 상황을 경험합니다.

여행 중 헉과 짐은 두 사기꾼인 '왕'과 '공작'을 만납니다. 이 사기꾼들은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속임수를 써서 돈을 벌려고 합니다. 헉은 이들의 사기 행각을 목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됩니다. 특히 윌크스 가족을 속여 유산을 가로채려는 시도를 지켜보며, 헉은 결국 그들을 폭로하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 '왕'은 짐을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립니다. 헉은 처음에는 왓슨 양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지만, 결국 "지옥에나 가겠다"며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짐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장면은 헉의 도덕적 성장을 보여주는 소설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헉은 짐이 갇힌 농장으로 가서 짐을 구출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톰 소여를 만나게 되는데, 톰은 헉이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보고 놀랍니다. 톰은 헉의 구출 계획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실제로는 불필요하게 복잡한 탈출 계획을 세웁니다. 톰은 낭만적인 모험책에서 영감을 받아 짐의 탈출을 하나의 게임처럼 만들어버립니다.

결국 짐은 탈출하지만, 이 과정에서 톰이 다치게 됩니다. 짐은 자신의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톰을 돕기로 결정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왓슨 양이 죽으면서 유언장에 짐을 자유롭게 해주라는 내용이 있었고, 톰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험을 위해 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결말에서, 짐은 자유인이 되고, 헉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톰의 이모인 샐리 이모는 헉을 입양하려고 하지만, 헉은 더 이상의 '문명화'를 거부하고 서부로 떠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단순한 모험 이야기를 넘어 19세기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 도덕적 가치, 자유와 구속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헉의 도덕적 성장과 자아 발견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 인상 깊은 구절들

자기 친척도 아니며 누구에게도 아무 쓸모도 없고 이제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모세에 대해 과부댁은 있는 신경 다 쓰면서, 나에게 쓸모 있는 일이어서 내가 하면 그것을 트집 잡는 판국이다. 사실 과부댁도 코담배를 맡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니까 물론 그것은 괜찮다는 식이었다.
내가 원한 것은 어디엔가 가는 것이었다. 내가 원한 것은 어떤 생활의 변화였다. 나는 까다로운 아이가 아니었다.
별들은 빛났고 숲속에서는 나뭇잎들이 처량하게 버스럭거렸다. 멀리서는 부엉이가 죽은 사람에 대해 통곡하듯 울부짖었고, 소쩍새 한 마리와 개 한 마리는 지금 막 죽어가는 어떤 사람에 대해 울음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바람은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전에만 해도 나는 그다지 학교에 가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이제 아빠에게 분풀이하고 싶어 학교에 열심히 가겠다고 생각했다.
과부댁 쪽이 그 재판에서 이길 것이라고 사람들은 짐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나는 충격이 컸다. 왜냐하면 나는 과부댁의 집으로 돌아가서 답답한 생활에 갇혀, 소위 말하는 교양을 쌓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전국을 가로질러 떠돌 것이다. 주로 밤 시간을 이용해서 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사냥과 낚시로 목숨을 유지하면서 아빠나 과부댁이 더는 나를 발견할 수 없도록 멀리 가버릴 작정이었다.
모든 것이 쥐 죽은 듯 고요하고 밤은 깊고 늦은 시간인 것 같았고 늦은 시간임을 냄새로도 알 수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의 뜻을 알 것이다. 그걸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다.
행운이 오는 때를 알아서 무얼 헐려구? 행운을 멀리 쫓아버리고 싶은감?”
그래. 생각해보면 지금 난 부자여. 나는 몸뚱이의 주인이여, 값이 8백 달러나 돼. 그 돈이 지금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거여.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옳게 행동해도 괴롭고 그릇되게 행동해도 괴롭지 않고, 양쪽의 보답이 같다고 하면 옳게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하고 되뇌었다.
계속 악운이 닥치면 결국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게 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았다.
아빠한테서 배운 건 없지만 한 가지 배운 것은 이런 부류의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최선의 길은 그네들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뗏목으로 돌아와 계산해보았더니 그가 모금한 돈은 87달러 75센트였다. 게다가 왕은 숲을 통과하여 집으로 향할 때 짐마차 밑에서 발견한 세 갤런들이 위스키 병을 슬쩍해왔다. 왕은 말하기를 전체적으로 따지면 그가 전도 사업에서 이제껏 벌어들인 어떤 날의 수입보다 더 좋은 수입이었다고 했다. 천막 집회에서 사람들을 속이는 데 이교도를 끌어들이는 것은 해적을 끌어들이는 수법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사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왕은 말했다.
의사 놈이 도대체 뭐야! 까짓 놈 상관할 게 뭐 있어? 이 읍내의 모든 바보들이 다 우리 편을 들고 있지 않아? 어느 읍이나 바보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게 아니겠어
자질구레한 일은 돈이 드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존경받게 하고 호감을 사게 하는 것은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이다.
비록 경험이 없어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궁지에 몰렸을 때 진실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사악한 짓을 하기로 했다. 자라기를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나쁜 짓이 내 적성에 맞고 착한 짓은 맞지 않는다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우선 나는 짐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도록 그를 훔쳐낼 생각이었다. 그보다 더 나쁜 일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 일도 할 예정이었다. 이왕 나쁜 길로 들어섰고 또 영원히 들어선 이상 뿌리를 뽑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특별한 계획을 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앞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신의 섭리가 내 입에다 알맞은 말을 넣어주실 것을 믿고 걸었다. 그냥 내맡겨두기만 하면 신의 섭리는 늘 적절한 말을 입에 넣어주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뻐했다 하더라도 나의 기쁨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야말로, 멈춰서 반성할 때다.
DALL-E, 당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야말로, 멈춰서 반성할 때다.

💭 나의 사색

톰 소여의 모험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서 그 속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다. 톰 소여의 모험보다 분량이 꽤 많아서 다 읽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내 어릴 적 향수를 느꼈다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향수보다는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만연한 '도덕적 관념'이 현대와 맞지 않아서 굉장히 괴로웠다. 마크 트웨인이 허클베리 핀을 도구로 사용하여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었다. 마크 트웨인은 그 시대의 잘못된 관념을 꼬집었는데, 허클베리 핀이 성장하면서 느끼던 고뇌와 도덕적 갈등에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그럼 생각해보면, 지금 2025년에도 잘못된 사회적 관념 내지 도덕적 규범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관념과 규범과 규칙이 사실은 옳지 않은 게 있지 않을까? 절대 다수가 옳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진리와 다른 게 아닐까? 임춘성 교수가 『역량』에서 인용했던 <당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야말로, 멈춰서 반성할 때다.>가 생각났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방금 내가 발췌한 문장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마크 트웨인의 가슴 찌르는 한마디 역시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겠네요. “당신이 다수의 편에 서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야말로, 멈춰서 반성할 때다.”
<역량 > - 임춘성

놀랍게도 이 인용구의 주인은 마크 트웨인이었다! 

그럼 물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환원주의를 활용해서 나의 삶에 적용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내가 대체로 옮다고 느끼던 것 내지 아무런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은 그릇된 것일 수도 있고 치열한 고민과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흑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죄였고, 흑인들이 자유인이 되도록 돕는 것은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었다. 이유도 모를 원한으로 상대 가문의 일원을 '그냥' 죽이는 것이 명예로운 것이었고, 원한과 무관하게 사랑하는 것은 가문의 '치욕'이었다. 그 어떤 근거도 없는 미신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때였다.

진실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나의 삶의 가치나 생활 패턴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애착이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종교 비판인 것 같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허례허식에 가득 찬 종교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자기 친척도 아니며 누구에게도 아무 쓸모도 없고 이제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모세에 대해 과부댁은 있는 신경 다 쓰면서, 나에게 쓸모 있는 일이어서 내가 하면 그것을 트집 잡는 판국이다.>라는 문장에서 그 비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유롭게 살고 그릇된 사회 관념에 저항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허클베리 핀에게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돈은 오히려 허클베리 핀의 자유를 억압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허클베리 핀은 땟목 위에서 자기가 온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완전하게 느낀다. 허클베리 핀은 생김새와 피부색은 어떤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진실되며 착하고 친절한 친구이면 되었다. 그 친구를 위해 사회의 목소리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목숨을 걸고 저항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삶을 살면서도 그의 몫으로 정해진 막대한 부는 운명의 실로 서로 이어져 있는 듯, 절대로 허클베리 핀의 운명에서 떠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삶을 채웠더니 돈이 저절로 따라오는 형태인 것이다. 영원히 모험을 하며 사는 삶은 어떨까?    

 

✍️ 마무리 생각

허클베리 핀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막대한 부가 그를 따라다닌다. 물론 허클베리 핀이 그 부를 만끽하며 살았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그 부를 피해 다녔다. 부를 바라보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 너무 진심으로 부를 바란다. 어떻게 나도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과 같이 모험을 하며 즐겁게 살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삶은 정말 지옥 속 철장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