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현실에 대결하는 영혼의 발전을 담은 헤르만 헤세의 걸작 『데미안』. 독일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던 작품으로, 열 살 소년이 스무 살 청년이 되기까지 고독하고 힘든 성장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안과 좌절에 사로잡힌 청춘의 내면을 다룬 이 작품은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세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목사인 부친과 선교사의 딸인 모친 사이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민음사
출판일
2009.01.20

📚 이 책을 고른 이유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인용한 책이다. 특히,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건내 준 쪽지 속 문장이 유명하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적었는데,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또 유명한 문장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이다. 사실 이 책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세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그 두 문장을 '스스로 해야한다'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기 때문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나의 삶은 나에게 이르는 길이다라는 문장을 얻었다. 그리고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살 때만 가치가 있다는 데미안의 말도 가져간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삶에서 설렘을 느꼈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것 같다.

💫 인상 깊은 구절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인간에게 거슬리는 것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그게 전부야. 네가 알고 싶어 한 일도 정확하게 같아.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봐. 그러면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 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라고.
내 본질이 정말로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그런 경우라면, 너의 내면에서 명령하는 무언가를 네가 해 보기만 하면 그럴 때는 좋은 말에 마구를 매듯 네 온 의지를 팽팽히 펼 수 있어.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살 때만 가치 있어.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ㅇ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ㅇ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누구도 직분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들은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몰라. 한 그루 나무거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한 말이야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라고 한다. 무언가를 하고 누군가가 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아무도 알려줄 수 없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나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한다. 나를 찾고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그런 일에서는 서로 도울 수 없어. 나를 도와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어. 너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해, 그러고는 정말로 네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 그걸 하면 돼.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아. 좋은 운명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나의 운명을 살아내는 것이다. 영원의 한 부분을 살아갈 뿐이라도 나는 내 모습으로 그 부분에서 빛나고 있어야 한다. 다른 빛 말고 내 빛으로. 드라마 조명가게에서도 그렇다. 나의 빛만이 나를 살린다.
오히려 자연의 의지는 개개인들 속에 적혀 있어. 네 마음속과 내 마음속에. 예수 속에 적혀 있고 니체 속에 적혀 있지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떤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기꺼이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살리라는 것

 

DALL-E,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나의 사색

이기적인 유전자, 불멸의 나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 위에 한 점. 비록 그것이 나라도 하더라도, 내가 느끼고 분투하는 이 삶은 실재이고 영원처럼 느껴진다. 유전자의 무한 복재를 위한 생존 기계라고 하더라도 나는 원자로 이루어 진 뇌 위에서 생각한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던 것일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라며 헤르만 헤세는 책 『데미안』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책의 결론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에 오르지 못 한, 오르지 않은 사람들을 비관한다. 그들의 삶을 축복하기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걷지 않는 존재를 '개구리', '도마뱀', '개미'로 부른다. 헤르만 헤세는 우리를 꼬집기 위해 일부로 적나라한 단어를 사용했을 것 같다. 부디 우리가 탈선하지 않고 선로 위로 똑바로 걸어가기를 원하면서.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유년 천천히 조금씩 부서트리면서 우리를 꼬집는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유년의 때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사실 내가 그렇다. 부모님의 우산 아래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존재하고 싶다. 남들이 가라고 가르켰던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이 옮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남들이 내가 안전하고 평안하고 확실한 길로 가고 있다고 속삭인다. 싱클레어의 유년의 세계는 삭아가다 부서졌고,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나도 이제 나의 유년을 보내주고 스스로 자립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헤르만 헤세는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은 거슬린'다고 했다. 나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유년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껍질을 까고 나온 새에게 가장 거슬렸던 것은 그 '껍질' 아니었을까. 나의 유년, 나의 방어막이 커버린 나에게 거슬리게 된 것이 아닐까. 몸이 커져 입고 있던 옷이 작아졌어도, 그 옷이 편안해서 벗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몸에 맞는 옷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인간에게 거슬리는 것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참 많은 책들에게 나에게 비슷한 말을 해주었다. 내가 나를 찾아야 한다고. 데미안, 아니 헤르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었다.만 헤세도 같은 말을 했다.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라고.

나의 길을 어떻게 찾을까.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보면 더 잘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럼 나를 충분히 자세히 바라보면 나를 알게 되지 않을까? 헤스만 헤세는 자기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가라고 한다. 거북이처럼!

어떤 짐승이나 사람이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어떤 특정한 일로 향하게 하면 그는 그것에 도달하기도 하지. 그게 전부야. 네가 알고 싶어 한 일도 정확하게 같아. 어떤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바라봐. 그러면 그에 대해서 그 자신보다 네가 더 잘 알게 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나를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방은 자기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필요한 것, 자기가 꼭 가져야만하는 것만 찾는다. 그래서 나방은 마법의 육감을 개발했다. 나도 나를 알게 되면 나에게 뜻과 가치가 있는 것, 필요한 것, 꼭 가져야만 하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럼 나도 특별한 어떤 것을 개발하지 않을까?

내가 나의 본성에 맞는 일을 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고명환 작가도 그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그랬고, 여기에서 헤르만 헤세도 그렇다고 말한다.

내 본질이 정말로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그런 경우라면, 너의 내면에서 명령하는 무언가를 네가 해 보기만 하면 그럴 때는 좋은 말에 마구를 매듯 네 온 의지를 팽팽히 펼 수 있어.
“나는 실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전에 사색을 통해 상상을,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가며 사는 삶이 나에게 설렘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중이다. 그런데 헤르만 헤세도 그런 삶을 응원하고 있었다!

생각이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살 때만 가치 있어.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라고 한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생각! 그것을 살아보라고 한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꿈! 그것을 살아보라고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직분과 역할을 다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ㅇ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ㅇ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누구도 직분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세계가 내 안에 있다고 한다. 내 안에 세상이 뿌려놓은 씨앗이 있다. 내 안에 고유한 나의 본성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물질들만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 안에 있는 세계를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몰라. 한 그루 나무거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한 말이야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라고 한다. 무언가를 하고 누군가가 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아무도 알려줄 수 없고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나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한다. 나를 찾고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그런 일에서는 서로 도울 수 없어. 나를 도와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어. 너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해, 그러고는 정말로 네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 그걸 하면 돼.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아. 좋은 운명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나의 운명을 살아내는 것이다. 영원의 한 부분을 살아갈 뿐이라도 나는 내 모습으로 그 부분에서 빛나고 있어야 한다. 다른 빛 말고 내 빛으로. 드라마 조명가게에서도 그렇다. 나의 빛만이 나를 살린다.

신의 뜻을 찾는가? 내 안에서 찾아라. 세상은 급격하게 변한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내 안에 심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연의 의지는 개개인들 속에 적혀 있어. 네 마음속과 내 마음속에. 예수 속에 적혀 있고 니체 속에 적혀 있지
불확실한 미래가, 그것이 가져올 어떤 것에나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발견할 만큼 우리 누구든 그토록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기꺼이 자기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싹의 요구에 그토록 완전히 따르며 살리라는 것

 

✍️ 마무리 생각

부모님, 유년, 학교, 종교, 도덕에서 말고 내 안에서 '나'를 찾으라고 한다. 아무도 내게 '내'가 누군지 알려줄 수 없다. 알려주어서도 안 된다. '나'를 찾고 나의 길을 나아가는 것은 순전히 '나'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하지만 나를 찾고 나의 길을 가는 자립은 너무나도 괴롭다. 외로울 수도 있다. 내가 발견한 나의 진정한 모습과 나의 길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그것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다른 것은 삶이 아니다. 삶이 아닌 것을 살면 안 된다고 한다. 삶이 아닌 것을 사는 존재는 개구리, 개미라고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싱클레어는 유년의 때 자신의 세계가 천천히 삭아가고 붕괴하다가 대학을 지나서야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이제 시작했다. 이제야 내 세계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부모님의 우산 아래 머물고 싶은 욕구가 크다. 나 혼자 자립하기가 싫다. 남들의 시선이 편하다. 하지만 나의 길이 아님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해서 세계를 부숴야 한다. 계속해서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거북이처럼.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방 구석에 처박혀 눈만 감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에서 솟아 오르는 그것. 그것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설렘을 물어다 주는 새가 있다면, 그 새가 나의 파랑새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게 있다면, 그 생각이 나의 꿈이다. 부디, 세계를 깨부수고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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