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룰루 밀러
- 출판
- 곰출판
- 출판일
- 2021.12.17
📚 이 책을 고른 이유
데미안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번갈아 가면서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책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밀리의 서재를 켰다. 그러다가 참 독특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이지? 호기심을 억누르기 싫어서 그냥 놔두었다. 그리고 서평을 봤는데, 오... 꽤 좋은 반응들이 모여있었다. 그래서 어떤 책인지 조금 검색해봤다. 오.. 저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역경에서도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분투하는 중에 글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이 내 호기심을 깨웠고, 나는 그 호기심을 누르기 싫었다. 그리고 호기심이 가는데로 가다가 우연히 나랑 같은 고뇌에 빠진 저자를 발견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책을 폈다.
💫 인상 깊은 구절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질척거리는 변명도, 죄도 아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직관적 질서가 우리 내부에 장착된 장치의 일부라는 사실이 그 질서가 진실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질서가 유용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질서가 우리 인간 종이 우리를 둘러싼 혼돈을 성공적으로 항해하고 탐험하도록 도움으로써 수 세대에 걸쳐 기여해왔다는 뜻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당신을 그 단단한 가장자리에서 마지못해 뛰어내리게 했던 실연은 결국 더 좋은 짝을 찾게 해준 선물로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꿈들까지도 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희망까지도… 어느 정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나의 사색
룰루밀러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박살난 삶으로 괴로워 했다. 절망스러웠고 좌절했다. 그러나 계속 살아가기 원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런 절망 속에서도 꾿꾿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그녀는 이 절망을 혼돈이라고 표현했다. 질서를 자기의 손으로 부쉈다. 부서진 질서의 틈으로 혼돈이 세어나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녀가 혼돈 속에서도 꾿꾿히 살아나가기 위해 선택했던 등대였다. 길 잃은 자신에게 등불이 되어줄 인도자가 필요했다. 그는 자기가 수집해왔던 물고기들의 표본이 모두 찢겨지고 부서진 상황에서 바늘을 손에 들고 꼬리표를 찢겨지고 부서진 물고기들의 살에 찔러 넣었다.
혼돈에 절망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도 자신의 혼돈을 걷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쓴 글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의 삶을 낱낱히 파해쳤다.
하지만, 깨달음은 전혀 생각지도 못 한 곳에 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깨달음을 발견하지 못 했다. 오히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반대 편에서 깨달음을 발견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정죄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자기에게 빛이 되어줄 인도자로 선택했던 사람에게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인도자가 잘못된 길을 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 좌절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왜 그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까. 혼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꾿꾿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던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했다. 용서받지 못 할 죄를 저지른 이유가 궁금했다.
생명나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청년이었을 때 스승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개념. 그 개념을 붙잡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 개념이 틀렸다는 증거들이 쌓여갔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했다. 세계가 자기에게 던지는 혼란에도 굴하지 않던 자세로 그 개념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공부했고 그의 인생 전반을 이해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평안히 잠들었다. 수 많은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서도 시원한 새벽 공기와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별 아래에서 숨을 거뒀다.
룰루 밀러는 괴로웠다.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그 어떠한 정죄가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세계가 그에게 준비해 놓은 형벌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온 ‘어류’를 분류하는 작업. 그 자체를 부인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자체를 부정했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분류학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어류는 그저 ‘물 속’에 살면서 ‘미끄러운 피부’를 갖는 모든 것을 뭉뚱그려 분류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 바깥’에 살면서 ‘미끄럽지 않은 피부’를 갖는 모든 것을 ‘비어류’라고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룰리 밀러는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관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꼈지만, 그 또한 수 많은 관점 중 하나임을 깨닫고 자유를 얻었다.
인류가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구분 해놓은 ‘질서’의 본질을 깨달았다. 진리와 무관한 ‘질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질서’ 너머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이 구분 지어놓은 경계를 넘어 우주가 표현하고 있는 진리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각자에게 해당 하는 물고기를 버리면 얻게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물고기다. 내가 곤고하다고 생각했던 도덕이 물고기다. 확실한 게 불확실해지고 곤고하던 게 무너지면 그 다음으로 나아간다. 각자에게 모두 다른 물고기가 있고 다양한 ‘다음’이 있다.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을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룰리 밀러 본인이 혼돈 속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롤모델을 한 명 찾았다. 실제로 롤모델은 혼돈 속에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 사실을 확인했다. 얻은 것은 명백했다. 그 롤모델이 성취한 것들이 그의 꾸준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무엇이 그를 혼돈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지는 알아내지 못 했다.
하지만 그 여정을 시작할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깨달음을 얻었다. 혼돈을 정리하는 ‘질서’가 의미 없을 수 있음을.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괴롭하게 하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을 멈췄다. 혼돈을 받아들였다.
세네카의 말이 떠오른다. 군중과 멀찌감치 떨어져 건강한 삶을 회복하려고 애써야 한다. 군중이 믿어의심치 않는 질서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질서를 멀리 떨어트려 놓고 생각해 보라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
1616년 2월 26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던 자신의 신념을 포기했다.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주장함. 천동설은 직관이었다. 모두가 옳다고 믿었다. 일부 소수만 빼고. 하지만 지동설이 진리다. 이제는 모두가 옳다고 믿는다. 일부만 빼고.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언제나 물어야 해, 언제나 의심해야 하고. 〉
✍️ 마무리 생각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든 범주 속에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길을 열심히 따랐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그게 틀렸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범주에 나의 가능성을 끼워 맞춘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나는 아직도 알 속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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