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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INSPIRATION (마음의 꾸준함)/오늘의 독서

세네카 행복론 - 세네카 "군중이 지나간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by S.P 2025. 2. 9.
 
세네카의 행복론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와 같은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을 우리 마음속에 던져주는 책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런 물음에 세네카는 “진짜 행복한 삶이란 신뢰할 만하고 올바른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책에 소개된 세네카의 주옥같은 글들을 읽다 보면 지금 나에게 닥친 여러 가지 고민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깨달음을
저자
세네카
출판
메이트북스
출판일
2019.05.08

📚 이 책을 고른 이유

고명환 작가가 유튜브에서 세네카의 행복론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 궁금해서 세네카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고, 세네카가 쓴 세 권의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국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행복론이었고, 읽기도 수월하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많은 책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과 많이 비슷해서,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인간에게 적용되는 여러 잠언과 진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행복한 삶을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격언은 굉장히 많은 지혜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네카는 특히 자연에서 배운 것을 나에게 적용하여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고 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 인상 깊은 구절들

우리는 먼저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목표를 향해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일단 올바른 길에 들어선다면 하루하루 어느 정도 왔는지 가늠할 수 있으며, 자연스러운 욕구를 따라서 그 목표까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널리 알려져 있는 길이 오히려 속임수인 경우가 빈번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야 할 길로 가지 않고 목동을 따르는 양떼처럼 그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향하지 않는 것이다.
이성을 따르지 않고 남들처럼 그들에게 맞춰진 공식에 따라 사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 누구도 혼자서만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길을 헤매도록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선례를 따르는 것은 해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군중과 멀찌감치 떨어져 건강한 삶을 회복하려고 애써야 한다.
다수의 선택을 받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최선인지 꼼꼼히 따져 물어야 한다.
군중의 마음을 이끈 것을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에게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줄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견고하고 균형 있으며, 아름다운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어디로 손을 뻗어야 하는지만 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것들에 집중하되 과도한 평가를 자제하고, 행운의 여신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유는 행운의 여신에게 무관심할 때만 얻을 수 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성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욕망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답하겠다.
진짜 행복한 삶이란 신뢰할 만하고 올바른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맞추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낯선 것들이 우리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며, 오롯이 자기 인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의 부족함이 없어야 하며, 지식에 바탕을 두고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일단 결심을 굳히면 끝까지 밀고 나가 절대로 바꾸는 법이 없어야 한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런 사람은 균형 잡히고 질서를 제대로 유지해 모든 행동에 친절한 본성과 고매함을 보일 것이다.
주저함과 나태함은 본인의 결심에 자신이 없고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서 끝까지 나아가고 정해진 한계를 지킬 때만 최고의 선이 완성되며,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아야 한다. 완전체를 넘어선 곳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며, 최종 한계 너머에는 어떤 목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덕은 그 자체를 바란다. 미덕보다 나은 것은 없고,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다.
행운의 여신에 대한 기대, 육체에 온갖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화보다 더욱 불안정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소한 쾌락과 고통에도 흔들린다면, 어떻게 신에게 복종하고 어떠한 일도 흔쾌히 받아들이며, 불평불만 없이 운명에 순응하고 본인의 불운을 진실한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모든 고난이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용감한 전사처럼 아픈 상처의 개수를 세고 참아내며, 날카로운 무기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다스려온 미덕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신을 따르라’는 오래된 격언을 가슴속에 새길 것이다.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거나 어떤 가혹한 일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아니면 착한 사람들과 혹은 나쁜 사람들이 질병이나 죽음, 육체적인 불구 혹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장애물을 만났다고 해서 지나치게 흥분하고 후회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
우주의 법칙이 흘러가는 결과로 인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마땅히 참고 이겨내야 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은 우리가 엄숙히 선서했던 바가 아닌가. 우리는 신의 지배 아래 세상에 태어났고 신에게 복종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다.
. 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고, 나를 태어나게 해준 자연의 섭리에 감사할 것이다. 자연보다 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어디 있을까?”
부유함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들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만약 현인들이 부를 잃는다면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당신이 부를 잃는다면 말문을 잃고 어딘가 버림받은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현인들에게 있어서 부는 그저 부일 뿐이지만, 당신에게 부는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인들은 부를 소유한 주인이지만, 당신은 부의 노예인 것이다.
지혜로움이 가난과 직결된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학자들도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손에서 빼앗거나 누군가의 피가 묻은 돈이거나 타인에게 부당한 짓을 해서 얻은 것이 아니어야 하고, 수입과 지출이 일정한 자들의 시기심을 사는 것만 제외하고 누구의 불만도 사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정당한 재산이라면 얼마든지 쌓아두어도 무방하다. 재산이 얼마나 많건 이는 정직한 것이니 상관없다.
마치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도 마차에 타는 것을 좋아하듯이 가난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왕이면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현인은 재산을 소유하되 언제든지 훨훨 날아가버릴 수 있는 덧없는 것으로 여기며, 그 재산이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짐이 되는 것은 피할 것이다.
남들에게 베푸는 것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그저 기분이 내키는 대로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선물을 준다고 생각하면 굉장한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저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베풀 때는 먼저 돌려달라고 하지 않아야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되받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 때는 반드시 필요한 때가 되기 전까지는 보물처럼 저 깊은 곳에 묻어둘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언제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빵 한 조각이 없다고 한들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렇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고 싶은가? 물론 으리으리한 저택이 나을 것이다.
현인은 부를 노예처럼 부리지만 바보에게는 부가 주인 행세를 한다. 현인은 부를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지만, 바보는 금은보화 말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평생 부자로 살 수 있다는 약속이라도 받은 것 마냥 쉽사리 부유함에 길들여지고 집착하지만, 현인들은 부유함에 둘러싸여 있는 순간에도 빈곤함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DALL-E, 군중이 지나간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 나의 사색

그 옛날 세네카도 다른 사람의 삶을 살지 말라고 말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널리 알려져 있는 길이 오히려 속임수인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나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남의 길로 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남들이 세운 규칙과 공식을 맹목적으로 따라 사는 것은 피하라고 한다. 내가 가진 이성으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과 내가 살아야 할 삶을 살기 위해서 일단 나의 삶을 지배해 왔던 도덕적 관념에서 멀어졌다. 나에게 삶의 방향와 모양을 제시하는 그 어떤 것에서도 멀어졌다.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세네카도 같은 말을 했다. 군중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건강한 삶을 회복하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길은 내게 옳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송길영 부사장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탐구하라고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심사숙고 해서 진실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그게 인생을 사는데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고 한다. 세네카도 똑같은 말을 했다. 무엇이 최선인지 꼼꼼히 따려 물어야 한다고 한다. 군중의 마음을 이끈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줄지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견고하고 균형 있으며, 아름다운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멀리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고 한다. 어디로 손을 뻗어야 하는지만 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손을 뻗어 닿을 정도라면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인데, 나는 내 안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네카는 자연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한다. 지혜는 자연이 보여주는 예를 따라서 나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자연에 따르는 삶이 무엇일까. 자연인으로 살라는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세네카는 또, 명예를 그렇게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물론 불명예스러운 삶을 피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명예를 얻기 위해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명예가 없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불명예는 피해야 한다.

세네카는 행운의 여신을 무시해야만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한다. 행운의 여신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건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허영을 좇다가 알거지가 되어보았기 때문이다. 또, 허영을 좇을 때 허영이 나의 주인이 되어 나의 삶을 통제한 것도 잘 안다.

세네카는 행복한 사람을’이성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욕망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가 말했던 ‘내게 맞는 나무에 오르는 사람’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내게 맞는 나무에 오르는 사람은 나무에 오르는 게 즐겁고 남을 질투하지 않는다. 시기와 질투 없이 삶을 즐겁게 산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재능을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진짜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의 말과 동일하다. 내가 설계한 삶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세네카는 자연에서 배우라고 했다. 자연에서 배우고 지식으로 무장한 뒤 결단을 내리면 결심을 굳히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고 한다.

송영길 부사장의 말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계속하게 된다고. 세네카가 말한 결단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야겠다는 말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할 때에는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남들이 말한 길이 아니고 남들이 보증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주저하거나 나태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 나는 나의 결심에 자신이 없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탐구해야 한다. 나를 설득할 정도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자연에서 찾고 책에서 찾고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서 올바른 길로 달려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미덕은 그 자체를 바란다고 했다. 나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선의 완성이라면 나는 그 삶 자체만 바라야 한다. 그 너머의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내게 맞는 삶을 산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돈, 쾌락, 명예, 권력, 지위는 그 너머의 것이다. 내 삶이 아닌 것은 살지 말아야 한다.

나의 삶을 행운의 여신에게 맡긴다면 나는 노예다. 행운의 여신의 노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행운의 여신은 눈이 멀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여신과 부딪힌 사람에게 행운이 깃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행운에 나의 삶을 맡긴다는 것은 노예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고난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카뮈의 부조리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온전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감한 전사처럼 아픈 상처의 개수를 세고 참아내며, 날카로운 무기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다스려온 미덕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

자살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장애물을 만났다고 해서 지나치게 흥분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주의 법칙이 흘러가는 결과로 인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마땅히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은 우리의 존엄이다. 세네카와 카뮈가 손을 맞잡고 외치는 것 같다.

세네카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으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자연의 섭리에 감사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는 현명함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잠언의 말과도 일치한다. 재산이 참 좋은 것들 중 하나임도 인정한다.

하지만 부는 부일뿐이라고 한다. 정당한 재산을 모으는 것은 좋다. 행운의 여신이 선물을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이 마차를 타면 더 좋은 것처럼 부 또한 그러하다. 부는 도구일 뿐이다. 없어도 산다. 있다면 베푼다. 다만, 낭비가 아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서 선물을 준다는 의미의 베품이다.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는데, 빵이 중요한가. 하지만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솔직한 세네카!

중요한 것은 부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 부는 집에 찾아온 손님이다. 에픽테토스의 지혜가 필요하다. 돈을 잃었는가? 돈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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