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정보

 
싯다르타
1922년에 발표된 《싯다르타》는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둔 성장소설로,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잇는 헤르만 헤세 성장소설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인 싯다르타는 고타마 부처의 출가 전 이름으로, 인도 최고 계급 바라문(브라만)의 아들인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체험과 수행을 그리고 있다. 평생에 걸쳐 내면의 자아와 삶의 본질을 탐구해 가는 구도자 싯다르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헤르만 헤세
저자
헤르만 헤세
출판
올리버
출판일
2024.06.14

 

📚 책과 저자

헤르만 헤세 (1877-1962)는 독일 출신의 작가이자 시인으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동양 사상, 특히 불교와 힌두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황야의 이리' 등이 있습니다.

1922년에 출간된 '싯다르타'는 부처님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지만, 실제 부처님의 이야기와는 다른 가상의 인물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찾기 위해 시작한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브라만의 아들인 싯다르타가 진정한 깨달음을 찾아 집을 떠납니다. 그는 수행자들과 함께하고, 세속적인 삶을 경험하며, 강을 건너는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나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강'이라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강은 시간의 흐름과 영원한 현재,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 내용 요약

  •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는 존경받는 브라만 가문의 아들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존 종교적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 사문(사마나)의 길: 친구 고빈다와 함께 고행하는 사문이 되어 육체적 고통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해답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 부처와의 만남: 고타마 부처를 만나지만, 타인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 세속적 삶으로의 전환: 아름다운 기녀 카말라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상인 카마스와미와 함께 부와 쾌락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 깊은 절망: 세속적 삶에 깊이 빠져들면서 도박과 욕망의 노예가 되고, 결국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합니다.
  • 강가에서의 새로운 시작: 강가에서 자살하려던 순간 "옴"이라는 소리를 듣고 깨어납니다. 그리고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어 강의 지혜를 배웁니다.
  • 아들과의 만남: 세속의 삶을 살던 중 카말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떠나가는데, 이를 통해 싯다르타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웁니다.
  • 최종적 깨달음: 바수데바의 가르침과 강의 소리를 통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완전한 평화에 도달합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같은 기본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 입자들도 결국 에너지의 다른 형태일 수 있다고 본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모든 존재와 경험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양 철학의 '일체성' 개념과 현대 물리학의 기본 원리는 놀랍게도 비슷한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물이 모든 것을 담아내고 흘러가듯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도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원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싯다르타가 강에서 깨달은 진리의 현대적 해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바수데바와 함께 강에서 배운 '모든 목소리들의 조화'는 어쩌면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 인상 깊은 구절들

친구여,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요. 당신은 당신이 배운 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돈과 옷과 신발을 얻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어요.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당신 읽고 쓸 수 있나요?”
“물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할 줄 알죠.”
“대부분은 못 해요, 나도 못 하고요. 당신이 읽고 쓸 수 있다니 잘됐네요. 정말 좋은 일이에요. 또한 여전히 주문을 외우는 것도 쓸모가 있을 거예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군요” 그녀가 그에게 외쳤다. “카마스바미 씨 댁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는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이죠. 만약 그가 당신을 좋아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일을 줄 겁니다. 영리하게 구세요, 구릿빛 사문이여.
결심을 한 순간부터 나는 내가 해내리란 걸 알았어요.
돌 하나를 물속으로 던지면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물 밑으로 가라앉겠죠. 싯다르타가 목표와 결심이 섰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싯다르타는 기다리며, 생각하고, 금식할 때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하지 않고 돌이 물속을 통과하듯, 나도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세상의 일들을 통과합니다. 이끌리는 대로 또 넘어지는 대로 목표가 끌어당기는 방향을 향해 싯다르타는 갑니다. 내가 그럴 수 있는 건 목표에 방해가 되는 어떤 것도 내 영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몰입의 즐거움 2장이랑 조금 연결되는듯)
누구나 마법을 부릴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요. 생각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고, 금식할 수 있다면 말이죠
상인은 남의 것을 공짜로 빼앗지는 않아요. 대가로 자신의 물건을 주지요.”
“진정 누구에게나 그건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주고, 누구나 받고, 주는 만큼 받는 것 그게 인생이죠.”
“하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혀 소유한 게 없는 당신은 무엇을 줄 건가요?”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을 줍니다. 전사는 힘을 주고, 상인은 물건을, 스승은 가르침을, 농부는 쌀을, 어부는 물고기를 주죠.”
그게 무슨 소용이죠? 예를 들어, 금식은 뭐에 좋은가요?”
“그건 아주 좋은 겁니다. 아무것도 먹을 게 없을 때 금식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싯다르타가 금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무조건 시키는 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곁에서건 어디에서건, 배고픔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렇게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조급하지도 않고 위급하지도 않지요. 저는 아무리 오랜 시간 굶주림이 저를 사로잡아도 그것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식의 좋은 점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좋지만 생각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다. 똑똑한 것은 좋지만 인내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다
싯다르타는 새로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많이 듣고,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말라의 말을 생각하면서 상인에게 결코 종속되게 행동하지 않았다. 상인이 그를 동등하게 대하도록, 아니 그 이상으로 대할 수밖에 없도록 행동했다.
그는 항상 우리 사업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여. 사업을 저 자신과 하나라고 여기질 않아. 그래서 사업이 그를 지배하지 못하지.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손해를 봐도 화내지를 않아.
실제로 싯다르타는 사업에 영혼을 쏟지 않았다. 사업은 카말라를 만나기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 잘되었고, 실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싯다르타가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대상은 오직 사람들이었다
그는 인류가 어린애나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런 모습들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경멸했다. 그는 대가를 치를 가치가 전혀 없는 돈과 하찮은 쾌락, 약간의 명예를 위해 애쓰고 고통받으며 늙어 가는 것을 보았다. 서로를 꾸짖고 모욕하는 것을 보았다. 사문이라면 웃어넘길 일에 고통받고 불평하는 것을 보았다. 사문이라면 느끼지 못할 그런 박탈감으로 그들은 고통받고 있음을 보았다.
사람들 대부분은 바람에 날려 공중에서 떠다니는 낙엽과 같습니다. 흔들리다가 땅에 떨어지죠.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별과 같아서 고정된 길을 가고 바람은 그들을 흔들지 못합니다. 그들 안에는 그들의 법과 그들의 길이 있지요.
매일 가르침을 듣고, 매시간 그의 지시를 따르지만, 그들은 모두 떨어지는 낙엽에 불과합니다. 자기 안에 그 가르침과 법이 있지 않으니까요
속세의 삶과 타성이 싯다르타의 영혼을 가득 채워 무겁고 피곤하게 만들어 잠들게 했다. 반면에 그 시간 동안 그의 감각들은 살아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었기에 싯다르타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 삶에 부여하는 가치, 기쁨과 두려움에 존재하는 많은 열정, 끊임없이 사랑에 빠지는, 두렵지만 달콤한 행복이었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거나 여자들, 자녀, 명예나 돈, 계획이나 희망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서 이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 많은 것들 중 어린아이와 같이 느끼는 삶의 기쁨, 어린아이의 어리석음과도 같은 이 기쁨을 그는 배우지 못했다
그 많은 것 중 그가 배운 것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멸시하는 태도와 같은 불쾌한 것이었다. (중략) 그는 세상과 욕망, 탐욕과 나태함에 사로잡혀 있었고, 마지막으로 그가 경멸하고 조롱했던 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악인 욕심에 사로잡혔다. 재산과 소유물, 그리고 부유함이 마침내 그를 지배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높은 곳으로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평탄하고 무딘 삶의 길을 걸었던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높은 목표도 갈증도 발전도 없이 하찮은 쾌락에 안주하며 결코 만족 없는 삶을 살았던가.
그날 온종일 그는 망고나무 아래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고, 고빈다를 생각하고, 고타마를 생각했다. 카마스바미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들을 떠나왔던가? 그는 밤이 되어도 여전히 그곳에 앉아 있었다.
여기 내가 내 망고나무 아래, 내 정원에 앉아 있구나.’ 그는 미소를 지었다. 망고나무를 소유하고 정원을 소유한다는 것이 정말 필요한 일이었나, 옳은 일이었나, 어리석은 놀이는 아니었나? 그는 이것들과 끝을 냈고, 이것 역시 그 안에서 죽었다. 그는 일어나서 그의 망고나무에, 그의 정원에 작별 인사를 했다
금식도, 기다림도, 생각하는 것도. 비참하고 오래가지 않는 소유물인 감각적 욕망과 부자의 삶을 얻기 위해, 그는 그 세 가지 소유물을 잊은 것이다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고, 아무 능력도 없고, 내가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으며, 배운 것도 없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고, 내 머리카락은 이미 반쯤 백발이 되었으며, 힘이 약해지고 있는데, 이제 나는 아이처럼 다시 시작하고 있다.
신의 은총을 경험하고, 옴을 다시 듣고, 적절히 잠들어 적절히 다시 깨어날 수 있기 위해 나는 절망을 경험해야 했고, 모든 생각 중 가장 어리석은 생각인 자살에 관해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내 안의 아트만을 찾기 위해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다시 살기 위해 죄를 지어야만 했다. 내 길이 나를 다른 어디로 이끌 수 있을까?
이 길은 어리석고 쳇바퀴 돌 듯 순환한다. 하지만 그러라고 놓아두자. 길이 뭐가 되었든 나는 그것을 따라가겠다
오, 도망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여기의 공기가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지, 얼마나 숨쉬기 좋은지! 내가 도망친 곳에서는 모든 것이 머리에 바르는 기름 냄새, 향신료와 포도주, 과잉과 나태의 향을 풍겼다. 부자들의 세상, 고급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과 도박꾼들의 세계를 내가 얼마나 싫어했던가! 그 끔찍한 세상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던 나 자신을 나는 얼마나 싫어했는가! 나 자신을 박탈하고, 독살하고, 고문하고, 나 자신을 늙은 사악함으로 만들었다! 절대, 절대 다시는 예전처럼 나 자신이 현명하다고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오, 나는 너를 칭찬한다, 싯다르타. 오랜 세월 이어진 어리석음 끝에 너는 다시 생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 가슴속의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그리고 그것을 따랐구나!
카마스바미와 머물면서 함께 돈을 벌고, 돈을 낭비하고, 배를 채우고, 그리고 영혼이 목말라 죽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었다. 훨씬 더 오래, 그는 이 부드럽고 잘 꾸며진 지옥에서 살았을지 모른다. 완전한 절망의 순간, 그 가장 극단의 순간, 그가 흐르는 물 위에 매달려 자신을 파괴할 준비가 되었던 순간이 없었다면 말이다
절망과 깊은 혐오를 느꼈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그의 안에 있는 새, 그 기쁨의 원천이자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기쁨의 이유였다. 그래서 그는 기쁨을 느꼈고, 그래서 웃었고, 그래서 그의 얼굴이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직접 맛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속세의 욕망과 부자의 삶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나는 어렸을 때 이미 배웠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건만 나는 이제야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안다. 기억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을 통해, 마음을 통해, 내 배를 통해 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좋은 일이다!’
무의미하고 음울하며 낭비되는 삶을,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 찬 싯다르타가 죽어 없어질 때까지 직접 살고 견뎌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그는 죽었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다. 새로운 싯다르타도 늙고 결국에는 죽을 것이다. 모든 육체적인 것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오늘 그는 젊고, 어린아이와 같다. 새로운 싯다르타이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의 종교적 헌신, 스승의 경고, 자신의 지식, 자신의 탐구가 그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소? 어떤 아버지가, 어떤 스승이 그를 지켜 줄 수 있겠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속세의 삶에 물드는 것, 죄책감으로 자신에게 짐을 지우는 것, 죄책감으로 인생의 쓴맛을 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을 누가 대신해 주겠소?
당신이 아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당신이 그를 고통과 실망에서 지켜 주고 싶다고 해서 아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소? 당신이 그를 위해 열 번 죽는다고 해도 당신은 그의 삶의 한 부분도 덜어 주지 못할 거요
그의 아버지도 지금의 싯다르타처럼 아들 때문에 똑같은 고통을 겪었을까?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하고, 이미 오래전 홀로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닐까? 싯다르타 자신도 같은 운명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반복, 이런 운명의 수레바퀴는 참으로 희극적이고 어리석지 않은가? 너무 기이하지 않은가?
고통을 다 겪지 못한 것은 모든 것이 다시 돌아왔고, 끝까지 고통받고 해결되어야 했다. 같은 고통이 계속되었다.
모든 것이, 모든 목소리, 목표, 갈망, 고통, 쾌락, 선과 악의 모든 것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건들의 흐름을, 삶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어.
이 실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것을 사랑하며 즐거이 그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네.
사랑이 나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하고, 경멸하는 것이 위대한 사상가들이 하는 일일지는 모르지. 하지만 나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세상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네.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과 존경심으로 바라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나는 말보다 사물을 더 좋아하고, 고타마의 말보다는 그의 행동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해. 그분이 아무리 자네의 위대한 스승이라 해도 말이야. 그의 의견보다는 그의 손짓이 내게는 더 중요해. 그의 말과 생각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그의 삶에서만 나는 위대함을 보게 된다고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
DALL-E,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

💭 나의 사색

싯다르타가 타인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고서 부처를 떠나 어느 마을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매우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를 만났는데, 그녀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사문의 차림새를 벗어나 머리를 단정하게 꾸미고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에게서 어떻게 하면 사랑을, 그녀를 배울 수 있냐고 물었다. 비싼 구두와 비싼 옷 그리고 돈으로 가득 찬 지갑이 필요하다고 했다.

싯다르타는 거지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카말라에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게 그 세 가지를 얻을 수 있겠냐고. 카말라는 답했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배운 것을 행하는 수 밖에 없다고.

카말라는 마을의 부자인 카마스바미에게 싯다르타를 소개했다. 아무래도 가난한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배운 것을 행하는 것이라지만 ‘가장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부자’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그렇게 싯다르타는 자신이 가진 세 가지, 생각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과 금식하는 것으로 카마스바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그와 함께 일을 했고, 돈을 많이 벌었고, 카말라와 사랑을 나누었다.

싯다르타는 사업에 영혼을 쏟지 않았다. 사업은 카말라를 만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싯다르타가 호기심을 보인 대상은 오직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사람들이 어린 애나 동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 삶을 경멸했지만 동시에 사랑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바람에 날려 공중에서 떠다니는 낙엽 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싯다르타는 사람들의 삶에서 좋은 면을 보았지만 그것을 배우지는 못 했다. 대신에 안 좋은 면은 그대로 배웠다. 자기 멸시, 욕망, 탐욕, 나태를 충실히 따랐다. 재산과 소유물, 그리고 부유함이 마침내 그를 지배했다.

어느 날 망고나무 아래에서 생각했다. 욕망과 탐욕과 나태한 삶을 살기 위해 아버지를, 친구를, 스승을 떠나왔던 것인가. 망고나무를 소유하고 정원을 소유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일이었는가. 생각의 끝에 다다라서야 싯다르타는 그의 정원에 작별 인사를 했고, 그 마을을, 카말라를 떠났다.

비참하고 오래가지 않는 소유물을 위해 생각과 기다림과 금식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나자 가장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이 비참한 삶을 그만하자는 생각. 강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다가 다른 깨달음을 얻고서 다른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강가의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났다. 그 이후에 삶은 그와 함께 진행되었다. 강에서 배웠고 강에서 깨달았다. 중간에 카말라와 재회하고 아들을 만났으나, 만남은 짧았고 영원한 이별을 맞이했다. 시간은 실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싯다르타는 완전한 평화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친구 고빈다에게 깨달음을 보이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황야의 이리를 읽고 나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일 듯 싶다. 철학과 감각적 삶의 조화. 이상을 꿈꾸며 질문하되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며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 깨달음은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 내 안의 자아를 골고루 성장하게 해야 하는 것.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 이게 헤르만 헤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말과 생각이 아니라 손짓 몸짓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사랑이 나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하고, 경멸하는 것이 위대한 사상가들이 하는 일일지는 모르지. 하지만 나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세상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네.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과 존경심으로 바라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나는 말보다 사물을 더 좋아하고, 고타마의 말보다는 그의 행동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해. 그분이 아무리 자네의 위대한 스승이라 해도 말이야. 그의 의견보다는 그의 손짓이 내게는 더 중요해. 그의 말과 생각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그의 삶에서만 나는 위대함을 보게 된다고.”

 

✍️ 마무리 생각

성직자의 삶, 욕망의 삶을 모두 살아본 싯다르타의 마지막 깨달음은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지 현대 물리학의 원자론을 다르게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한 쪽 면만 봐서는 완전할 수 없다. 두 면을 모두 인정해야만 비로소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물을 사물로 강을 강으로 시간을 시간으로 인정해야만 비로소 그것들 안에 깃들어 있는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 또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비로소 나의 진정한 자아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싯다르타는 강에서 배웠다. 이처럼 나 또한 자연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모든 목소리, 목표, 갈망, 고통, 쾌락, 선과 악의 모든 것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상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건들의 흐름을, 삶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한 면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없다. 양 면을 모두 봐야만 한다. 고통이 괴로워 피하고 싶지만, 고통 또한 세상이라면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아닐까? 고통은 삶의 한 면이기에 고통의 다른 면인 쾌락 또한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쾌락만을 좇아 살았지만 이제는 쾌락의 반대 면인 고통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삶이란 그 고통을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게 아닐까? 괴롭기에 고통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반쪽만 느끼겠다는 것 아닐까? 삶이 아닌 것은 살아내기 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헨리 데이비브 소로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헨디 데이비드 소로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디기로 결심한 것일까? 그래서 월든을 떠났던 것일까? 무지개 뒤에 보물상자가 있다는 것은 사실 고통 뒤에 삶이 있다는 말이지 않았을까?

 

▶ 싯다르타 1부 보기

2025.02.23 - [DAILY INSPIRATION (마음의 꾸준함)/오늘의 독서] -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1부) - "가르침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1부) - "가르침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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