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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INSPIRATION (마음의 꾸준함)/오늘의 독서

사색 - "내가 바라는 안정의 진실"

by S.P 2025. 2. 4.

내가 바라는 안정의 진실
DALL-E, 내가 바라는 안정의 진실

💭 나의 사색

돈을 추구하지 말아야한다는 건 깨달았다. 그럼 이제 무엇을 추구해야할까. 돈이 제공하는 안정과 자유 그 자체를 추구하면 될까. 내가 원하는 안정과 자유는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안정이란 비가 올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에 머물 수 있는 것.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 눈을 피할 수 있는 곳.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상태. 남들은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도 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남들이 고통 받아도 나는 고통에서 빗나간 상태. 남들에겐 어려워도 나에게는 쉬운 상태. 남들에겐 전쟁이지만 나에게는 게임인 상태. 남들에겐 재난이어도 나에게는 장난인 상태. 남들이 눈물 흘려도 나는 흘리지 않는 상태. 남들은 두 걸음 가야해도 나는 한 걸음만 가도되는 상태.

그럼에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못 하는 상태. 정죄 없는 상태. 죄책 없는 상태. 실제로 내가 자고 있을 때 바깥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나 지하철 소리나 공사장 소리가 들리면 내 마음이 평안하다. 내가 자고 있어도 남들이 일을 해주니까 괜찮다는 느낌. 내가 자고 있을 때 엄마가 밥해주는 소리를 듣거나 밥 냄새를 맡았을 때 느끼는 그 평온함과 평안함. 특권을 누리는 상태. 차별된 상태. 너는 해야하지만 나는 안 해도되는 상태. 책은 압축되어 있고 책 속 문장은 더더 압축되어 있다. 그럼 내가 원하는 안정을 압축해보기로 했다. 요약하자며 나는 결국 무엇을 원하는건가. 고통과 무관한 존재. 고통과 무관한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그럼 고통과 무관한 존재는 뭘까. 신 밖엔 없는 것 같다. 나는 신이 되고 싶었구나.

그럼 자유는 뭘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사람 갈 수 있는 상태.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상태. 원할 때 떠날 수 있는 상태. 초능력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항상 하늘을 나는 능력을 원했다. 산 위를 날고싶다. 어릴 때엔 꿈도 꿨다. 우산을 들고 달리면 몸이 붕 뜨는 꿈. 실제로 우리가 비 올 때 들고다니는 우산과 똑같지만 우산을 드는 느낌은 달랐다. 마치 대형마트에 있는 카드에 몸을 기댄 채 달리는 느낌. 달리다보면 몸이 붕 떴다. 그 상태가 좋았다. 하늘을 나는 꿈은 매번 같았지만 어떤 꿈은 비행이 잘 되었고 어떤 꿈은 아무리 달려도 붕 뜨지 않아서 달리다가 점프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떤 꿈은 점프를 해도 천천히 낙하할 뿐 비행하지 못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내 심장으로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아마 꿈을 꾸고 있는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회상하는 것만으로 심장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고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인상을 퍽 쓰고 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기 싫을 때 그만둘 수 있는 상태. 책임과 의무와 무관한 상태. 책임과 의무와 무관한 존재가 있을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지만 부정하게도 내가 원하는 자유는 책임과 무관한 상태이다. 의무마저 무관한 상태이다. 짐승은 그러한가? 아니. 잠언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의무도 책임도 없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바라는 안정과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종합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의무와 책임에서 자유롭고 동시에 정죄와 죄책에서 무관한 상태가 지속되는 안정된 상태를 바란다.

책임도 의무도 안 지면서 고통받지도 않는 상태.

일단 나는 여기서 글렀다.

그럼 그런 안정과 자유를 토대로 나는 나 자신을 찾는 탐구를 원했었다. 질문을 다시해야겠다. 왜 그런 안정과 자유를 토태로 해서 탐구하려고 했나. 왜 탐구의 조건이 안정과 자유였을까. 내가 나 자신을 찾는데 실패해도 괜찮을 방어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창피해서 그런가보다. 나를 찾지 못 할까봐 무서웠나. 진짜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상태를 원했던 것인가. 왜 그랬을까. 언제 진짜 나를 발견할 지 몰라서. 언제 내가 내 진짜 삶을 살게 될 지 몰라서.

지금 당장 발견하고 지금 당장 내 삶을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어떻게 그리고 언제 가능할지 모르니깐. 모르니깐 두려워서.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을 상태를 바란 게 아닐까.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이 필요한거였을까. 언제 찾을지 모르니까 불안해서 더 조급하게 돈을 모은게 아닐까. 안타깝지만 내가 봐도 책임과 의무와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불가능. 신기루를 쫓은 것이지. 모래성을 쌓는 것이지. 돈이 목적이든 책임과 자유와 고통에서 자유로운 상태가 목적이든 일단 완벽하게 틀렸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근데 진짜는 뭐고 가짜는 뭐지. 지금은 가짜인가. 어느 순간을 기준으로 그 전은 가짜고 그 후는 진짜인가. 진짜를 발견하는 순간 그 순간 이전은 가짜가 되는건가. 그 순간부터는 진짜가 되는건가. 그럼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앞당기는 건가. 이 또한 누가 누가 그 순간을 가장 빠르게 찾느냐 하는 문제인가. 그럼 삶은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뉘나. 그 순간을 발견하지 못 하면 삶은 무의미한가. 그 순간을 발견하지 못한 삶이란 허무한가. 그런데 그 순간은 순간인가. 나무는 언제부터 나무지. 어느 순간부터 나무인건가. 나도 어느 순간부터 나인건가. 나무는 나무고 나는 난데. 나무는 어느 순간부터 나무가 아니라 나무는 나문데. 그럼 나도 어느 순간부터 나인게 아니라 나는 언제나 나인게 아닌가. 그럼 진짜 나는 뭐고 가짜 나는 뭐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은 없는 게 아닌가. 나는 뭐지.

나는 나인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다'가 맞나. '이제'부터 '나는 나다'가 맞나. 내가 뭔지에 대해 고뇌하는 지금의 나도 나고, 언젠가 이 질문에 대답할 나도 나야.

그럼 질문이 잘못된 거 같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질문은 잘못됐다. 진짜 나와 가짜 나는 없다. 나는 계속 나다.

그럼 안정과 자유가 보장하는 상태에서 나는 무엇을 탐구하고 싶었을까. 왜 그 상태에서 탐구하고 싶었을까.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못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안정망이 필요했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언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서, 일단 안전한 상태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뭘 찾으려고 했던 것인지가 문제다. 진짜 나를 찾는 건 답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나였으니깐. 그럼 난 뭘 찾으려고 했던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돈과 무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 돈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닌 일. 내가 밥을 먹는 이유. 내가 잠을 자는 이유. 내가 숨을 쉬는 이유. 내가 일어나는 이유. 그 이유. 그 일, 그 이유.

돈이랑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무서웠나보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돈이랑 정말 무관해서 굶어 죽든, 얼어 죽든, 쪄 죽든, 욕 먹든 할까봐. 창피하고 자신이 없었나보다. 굶고 얼고 찌고 욕 먹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내는 게.

그래도 찾아보지 않을래? 정말 돈과 무관한 일이라면 빌어먹으면서라도 해보지 않을래? 재수하려고 했을 때 엄마아빠가 돈을 주지 않으면 외할아버지한테 가서 빌리려고 했었잖아. 그것도 안 되면 아르바이트 해서라도 해보려고 했었잖아.

빌어먹어 가면서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싶지 않을까.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 질문을 던져보자. 진정 내가 돈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이제 이 질문을 던지면서 책을 읽겠다.

읽기 전에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건 뭘까. 그러자 문득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가끔씩 했었다. 그 때는 이런 생각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여유도 없었고. 도움도 안 될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면 분명 꾸준히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몇 초간 절망에 빠졌다가 또 문득 생각이 났다. 옛날에는 게임을 정말 꾸준히 했었다는걸. 그런데 지금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진정 게임만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하라고 해도 싫다. 이런 생각을 했더니,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삶이라는 시간 전체를 관통하는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처음부터 절대적인 인생의 지도는 없다고 한 나민애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안중근 의사가 태어나자마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야겠다고 했겠는가. 이순신 장군이 처음 칼을 손에 들었을 때부터 왜구들을 섬멸하겠다고 했겠는가.

위로는 된다.

그럼 어떻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깨달을 수 있을까. 내가 해야하는 일이 있다. 일단 생계는 유지해야 한다. 고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하는 일은 충실히 해야한다. 해야하는 일을 하다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나는 하루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깨닫고 싶다. 그래서 책도 읽으려고 한다. 나라는 작은 우주에 빛나는 별을 달아줄 문장을 찾아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

마법 스크롤 상인 오지오 웹툰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그대는 나에게 성실하였는가."

나는 나에게 성실하였는가.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성실하였는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 해서라도 반드시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나는 나에게 성실하였는가.

그런데 이게 맞나. 아직도 확신이 없다. 그렇지만 어서 빨리 진짜 나를 찾아서 하루 빨리 진짜 삶을 살고싶다. 그런데 진짜 나인지 아닌지 진짜 내 삶인지 아닌지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일단 살아봐야 아는 것 아닐까. 모르겠다. 모든 게 엉망이고 생각은 서로 뒤엉켜 무슨 모양을 그려내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다. 

✍️ 마무리 생각

모르겠다. 내 안에서 답을 발견할 수 없다. 답이 안 보인다. 속는 셈 치고 책이라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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